땅과 집이 만나는 시간

이윤하·10개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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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이 만나는 시간

내일의 내 꿈, 집을 내 손으로 3편

이윤하

집은 어디에 지을까요? 무한한 우주의 한 점인 지구 위 어느 지정한 곳을 점유한 땅에 짓지요. 그래서 땅을 대하는 마음도 드넓은 우주적 상상과 사유의 산물이라고 감히 말합니다.


땅이면서 건축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곳을 대지라고 한다. 땅과 집은 한몸이다. 그런데 집, 건축물에 대한 많은 이야기만큼 땅, 대지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없는 것 같다. 땅은 집이 존재하기 위한 최소의 필요충분조건이고, 집이 존재하는 생애 동안 그 품에서 함께 실존하는 모태와 같은 것이다. 인간은 점유한 땅에 지번이라는 관리번호를 숫자로 매겨서 소유한다.


내 꿈 집의 시간은 땅에 대한 선정에서부터 비롯된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인 대지, 그 속에 삶의 터전이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집이 자리 잡는 터인 땅이야말로 이야기의 근원이고 원고지가 된다. 그러나 지적도에 나타난 대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둘러싼 울타리 밖에서 어깨를 맞추어 서로 연결된 주변 환경이 아닐까?


야자수 병풍집/ 손은영 작_ <기억의 집> 연작 Archival Pigment Print_2022


먼저 알맞은 대지를 골라야 하는 터 잡기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많은 이론과 실제 사례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형편과 때가 잘 맞아야 한다. 이미 많은 대지가 주인을 만나서 집을 짓고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고 하지 않은가? 때를 기다리고 정성을 들이면서 찾아보자. 그 또한 집을 짓듯 이야기를 짓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19세기의 학자인 서유구(徐有榘)가 집터를 찾아서 집을 짓고 꾸미는 구상이 『임원경제지』에 실려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집터를 고르는 중요한 네 가지는 지리, 생리, 인심, 그다음에 산수라고 하였다. 지리적 조건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생리적 조건이 결핍된 곳은 오래 거주할 수 없고, 생리적 조건이 좋다고 하더라도 지리적 조건이 나쁘면 오래 거주할 수 없다. 그리고 지리적, 생리적 조건이 모두 좋아도 인심이 좋지 않으면 후회하게 된다고 한다. 또 주거지 근처에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산수가 없다면 성정 性情을 도야할 길이 없을 것이라 했다.



집을 설계하기 전에 대지를 선정한다. 집주인이 선정한다고 하지만 실은 많은 이야기가 곁들여진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선정하기보다 ‘만난다’는 말이 더욱 애틋하고, 서로 관계를 맺는 ‘인연’이라는 과정적 스토리를 담는 말이 더 적절하다. 마치 결혼을 할 때 배우자를 만나듯이 중개인의 중매도 있을 것이고, 첫눈에 반해 계약에 성사할 때도 있을 테고, 여러 해 눈여겨보며 소망하고 기다린 인연도 있을 것이다. 우리네 결혼 스토리가 다양하듯이 땅을 만난 사연도 서로 사정이 다르고 스펙터클하다.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땅을 어떻게 마음속으로 들여놓을 수 있을까? 대지를 만날 땐 땅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연이 된 대지의 속성을 이해하기 위해 이 땅이 기억하고 있는, 또는 앞으로 땅과 집이 함께 기억하게 될 이야기를 만들어 보면 더욱 감정이입이 되어 친밀한 스토리텔링를 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땅과 시간, 땅과 공간, 땅과 인간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동백꽃 마당집/ 손은영 작_ <기억의 집> 연작 Archival Pigment Print_2022


첫째는 땅에 축적된 시간의 지층을 집의 이야기로 만들어 보자. 땅 위에 집이 지어진다. 이 땅에 있는 지어질 집이 함께 할 ‘생성과 소멸까지의 시간’을 땅이 기억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 땅 위에 뿌리내릴 집이 기억할 것이고, 이 집을 거처로 함께 시간을 영위하는 집주인이 기억할 수 있다. 이 시간에 겪는 다양한 변화의 향연을 땅과 집, 집과 사람, 사람과 땅이 서로 함께 겪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땅의 시간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미래에 또 다른 시간과 만날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시간은 찰나인 현재의 시간일 뿐이다. 시간을 바라보는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A.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의 <고백론>에서 시간론은 현재의 시간이다. 이에 의지하여 전개해보면, 현재 우리가 만나는 땅은 시간 속의 물리적, 인문학적 운동과 변화를 경험한다. 이 속에서 기다림, 지켜봄, 거쳐감 또는 기억함이 발생한다.


지금 찰나의 순간을 ‘지켜보기’ 때문에 현재이다. 현재 집을 지을 땅의 과거도 ‘기억함’ 속에 존재하는 실재의 시간이다. 이 땅의 미래는 ‘미래의 현재’이고 기대와 기다림이 있는 현재의 시간이다. 이 땅의 시간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어서 땅 위에, 설계도면 위에 개념화하고, 땅과 집의 ‘기억-지각-기대’를 형상화하여 기억하는 과정에 조응하는 집짓기를 해야 풍성한 기억이 잠재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퇴촌 갤러리 하우스. 기존 지형을 이용해 집을 지었다. 설계・사진제공: 건축사사무소 노둣돌


둘째는 땅과 만나는 공간에 대한 소통적 관계 맺음을 이야기로 만들어 보자. 건축에서 공간은 대지 위에 일정 규모의 벽과 천정을 만들어 점유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야외에 인간의 무형 행위를 담거나 응시하는 시선을 점유하면 그 또한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땅 위에 벽과 지붕으로 가두어 구획된 건축화 공간만을 공간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은 대지 위에 비건축화된 공간인 ‘빈 공간’도 공간이다. 우리는 이를 실내와 실외 공간으로 구분하여 지칭한다. 우리가 땅 위에서 만나는 공간인 이 두 공간에 공평한 대우가 필요하다.


이웃해 있는 집과 집 사이의 이른바 ‘빈 공간’은 여유와 사유를 제공한다. 또한, 자연과 완충하며 매개하는 공간이다. 물리적으로는 바람길과 햇볕과 그늘의 장면을 담는다. 비와 눈을 머금은 흙과 식물을 품는 대지로, 자연현상을 들여놓아서 공존을 통한 소통의 공간이다. 사계절의 변화를 체화하는 공간 사이 틈을 꽉 채우면서 비어있지 않고 변화하는 지금 이 시간의 연속성을 깨닫게 하는 실존하는 공간임을 확인해준다.


집에서 만나는 인간의 호흡과 경외는 자연을 느끼는 시간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집이라는 공간에 시간과 시선을 가두면 안 된다. 이웃이라는 공간과 마을이라는 공간, 그리고 시야를 확장하여 조망하는 먼 거리의 자연공간도 품을 수 있는 지혜를 담아내야 한다. 조선 시대 ‘면암정가’로 알려진 학자 송순(宋純)이 귀향하여 지은 ‘면암정’에 대해 아래 시(詩)에서 엿볼 수 있다. 집짓기에 대한 깊은 사유와 기다림의 미학, 그리고 초가삼간의 절제에서 이 집의 품격이 나온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草慮三間) 지어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 한 간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광주 햇살가득어린이집 설계・사진제공: 건축사사무소 노둣돌


셋째로 땅을 만나서 인간이 지어진 집에 대한 생각을 톺아보면서 사람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집을 짓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땅도 인간과의 궁합이 있다. 보편적으로 물리적, 인문학적 환경이 중요하다. 물론 경제적 사정을 고려한 대지 선정이 우선 할 수 있지만, 땅과 인간이 만나서 인공적인 집을 짓는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오랫동안 집에 사진과 그림 작업을 해 온 손은영 화가는 ‘기억과 노스탤지어 장소로서의 집’을 이야기한다. 집은 물리적 구축물로서의 집이지만 인간과 만나서 ‘집짓기와 거주하기’라는 시간의 켜가 첩첩이 쌓이면서 장소라는 존재적 의미로 살아난다.


집에 관한 탐구를 몇 가지 정리하면서 인간에게 있어서 집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보호 또는 피난처라는 쉘터shelter의 최소 개념에서 비롯된 집이 여러 가지의 의미로 진화하여 인간에게 사유로 각인된다. 이는 집이 땅과 조응하는 과정과 인간과 반응한 시간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기억의 장소를 말하는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인간 실존의 근원적 중심으로 집을 규정하면서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속성을 거주에 있다고 한다. 거주하는 인간과 집이라는 관계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조금 더 근원적으로 확장하여,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모든 공간은 본질적으로 집이라고 규정하고 인간이 거주하는 장소적 관계를 말한다. 이는 인간에게 집이란 현재라는 시간에서 기억되는 어떤 곳을 의식의 거처이며 중심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존재를 확인하는 의미의 중심에 집의 존재가 따른다는 의미이다.


이어지는 기사

1. 연재를 시작하며

2. 스토리 테크(Story-tech)가 짓는 집

3. 땅과 집이 만나는 시간

4. 쓸 만한 집터를 위한 대지 분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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