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 자리가 아닌 일상의 자리에서

김현경·1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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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자리가 아닌 일상의 자리에서

녹색건축물을 탐구하는 잘그린건축연구소 민현준 소장 2편

김현경

사진김현경

인구 정점이 지난 지금, 지방은 이미 빈집 문제를 앓고 있다. 각 지자체는 청년을 대상으로 월세 1만 원 아파트 같은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기도 한다. 갈수록 빈 집이 늘어난다면 공간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기준도 달라질 터. 오래된 공간을 부수고 새로 지을 것인지, 수선해 필요한 공간으로 바꿀 것인지 건물의 행방을 결정할 기준이 필요해 졌다. (주)잘그린건축연구소 민현준 소장은 공공건물부터 일반 건물까지 다수의 그린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해왔다. 앞선 인터뷰에서 그는 리모델링에서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개선하면서 실제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라 이야기했다. 앞으로 늘어날 빈 건물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민현준 소장과 나눈 리모델링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린 리모델링 시장 자체가 엄청나게 돈을 퍼붓고, 자랑하고 싶은 자리가 아닌 경우가 더 많아요. 스타의 자리가 아니라, 일상의 자리에 더 가깝죠. 하지만 누구에게나 굉장히 필요한 자리예요.”


Q. 편백경로당, 폐기물처리장 등 공공건물 사례가 많아요. 일반 건물 사례도 있나요?


간혹 들어옵니다. 제로 에너지 빌딩으로 그린 리모델링을 하게 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거든요. 제로 에너지 건물을 인센티브를 활용해 바닥 면적 자체를 법적으로 높여서 합법화하는 방법이 있어요. 저희한테 들어온 사례는 그렇게 많이 넘어간 건 아니었어요. 용적률 인센티브 범위 안쪽, 4~5%정도 살짝 넘은 상태여서 그것만 메꿨습니다. 


Q. 사실 제가 사는 집 베란다에 지붕이 있었는데, 최근 다 뜯어냈어요. 불법 증축이었던 거죠. 지붕을 뜯지 않을 방법이 있었던 거네요.


단순히 제로 에너지 빌딩 인센티브로만 판단할 수는 없어요. 주차나 조경 면적 등 건축법에 다른 몇 가지 다른 포인트가 있어요. 다른 조건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동작하지 못할 수 있어요.


Q. 건축법까지 종합적인 컨설팅이 필요하군요.


네, 실상 에너지가 아닌 다른 문제 때문에 못할 확률이 있거든요. 다른 컨설팅 회사는 건축법상 내용까지 알려주지 않고, 에너지만 알려줍니다. 건축사무소는 에너지 컨설팅이 어렵고요. 저는 다른 회사에 비하면 훨씬 유리한 게 있죠. 여러 사례들을 더 많이 접하다 보니 될지 안될지 더 잘 잡히는 것 같아요.



Q. 점점 오래된 건물이 늘어나면서 리모델링 시장도 떠오르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20년 전에 ‘유럽은 신축을 짓지 않는다. 리모델링을 주로 한다.’는 흉흉한 소식을 들었어요. 인구 정점이 지난 이후에는 리모델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우리는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처럼 더 급격하게 건물이 빌 거고요. 실제로 그걸 느끼는 게 서울도 외곽 구쯤 되면 반지하 주택이 거의 사라졌어요. 홍수 이후에 더 가속화되기도 했고요. 결국, 돈의 문제거든요. 지상 집이 없고 붐비니 강남은 아직도 반지하에 살지만, 다른 구역은 위에서 살고 있어요. 이탈리아 뉴스 보면 종종 1유로에 지역 집들을 판다고 하잖아요. 우리나라라고 그 일이 안 벌어지겠어요?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탈리아 1유로 프로젝트 방문 소식 출처: 서울신문


Q. 지방은 이미 벌어지고 있죠.


지방이라도 남녀 화장실 분리돼 있고, 단열이 좋은 집과 낡은 집 둘 중 어디서 살겠어요. 약간의 돈만 있다면 상태가 좋은 집으로 가겠죠. 상태가 안 좋은 집부터 빨리 비게 될 거예요. 그중에서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는 장소라면 낡은 빈집의 건축주부터 건물을 빨리 고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것을 느끼겠죠. 나중엔 빈집에 대한 처벌 조항이 생길 수 있고요. 20년 전 유럽이 겪었던 걸 이제 우리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Q.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는 장소부터 리모델링이 시작될 거라고요?


너무 밀도가 높은 곳은 리모델링 시장 대상이 아니에요. 밀도가 크지 않은 도시들은 그린 리모델링으로 예쁘게 단장하고, 옆 동네보다 더 쓸모 있게 만드는 경쟁을 시작할 것 같아요. 그게 대학가에서 벌써 벌어진 것 같고요. 벚꽃 위기를 겪고 있는 대학들은 건물 때문에 우리 학교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어요. 그런 부분을 리모델링으로 해소하고 있죠.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를 중심으로 미달 사태가 생기고 있다. 출처: 뉴스1


Q. 대학가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곧 일어나겠군요. 하지만 유럽과 우리의 상황은 다른 것 같아요. 유럽은 오랜 역사를 가진 건물과 도시 경관을 유지하고자 리모델링을 선택했죠. 반면 우리나라는 산업화하면서 부족한 공간을 채우기 위해 싸고 빠르게 지었고요. 


맞아요. 유럽의 많은 건물은 전성기에 지은 거고요. 완성도 높은 건물과 도시를 더 써보자는 거고, 우리는 빨리빨리 급하게 올린 것들이라 성질이 다르죠. 20년 전 스위스에서 도로 포장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우리는 두께 5cm짜리 보도블록, 요즘은 8cm짜리를 쓰잖아요. 거기는 한 30cm 정도 되더라고요. 


유럽 거리(좌)와 한국 거리의 모습


Q. 우리나라는 자주 바꾸는 대신 깨끗하죠.


우린 자주 바꿔서 예뻐요. 그 장점도 있죠. 하지만 공사할 사람이 점점 부족해지면 그 횟수를 줄여야 할 거예요. 한 번 지을 때 제대로 지어놓고, 오랫동안 신경 쓰지 말자의 기조로 점점 가겠죠. 리모델링도 마찬가지예요. 한 번 제대로 고치면 더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요. 신경 쓰지 말자는 우리의 본성 같은 겁니다. 급하게 짓는 건물은 더는 아무도 원하지 않아요. 우리가 지금 짓는 건물들도 되게 멋있고 좋잖아요. 지금 지어진 것들은 한 30년 뒤에 설비만 제대로 갈아도 나중에 되게 멋있다고 자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건물이 있는가 하면 빨리 부수고 동네를 새롭게 하자는 것들이 있죠. 너무 다 ‘아껴 쓰자, 고쳐 쓰자’로 갈건 아니고 적절한 선택 점을 늘 찾아야 하죠. 


Q. 신축과 리모델링의 기준점이 만들어져야겠군요.


저는 리모델링의 입장, 신축의 입장 둘 다 공감해요. 아까 얘기했듯 마스터피스를 가지고 리모델링하는 것과 급조된 박스를 리모델링하는 것은 달라요. ‘저 돈이면 건물을 새로 짓지’라는 시각도 공감이 되죠. 유럽은 일찌감치 리모델링이 의무로 갔어요. 일정 수준이 안되는 건물은 임대나 매매를 할 수 없게 했어요. 건물을 수리할 돈도 없다면 돈을 지원하기도 했고요. 최소 조건을 걸어 사유 자산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저희도 의무로 갈지 말지는 계속 고민되는 지점이에요. 그린 리모델링을 한다고 해서 그 동네의 주차 문제나, 쓰레기 문제, 냄새 등 많은 문제가 개선되지 않아요. 내 건물만 간신히 살아남는 거죠. 동네 자체가 좋아지진 않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재원 마련과 개선점 역시 필요합니다. 



Q. 많은 사람이 고려해야 할 문제 같아요. 생활과 맞닿은 이야기네요.


그린 리모델링 시장 자체가 돈을 엄청나게 퍼붓고, 자랑하고 싶은 자리가 아닌 경우가 더 많아요. 스타의 자리가 아니라, 일상의 자리에 더 가깝습니다. 일상 속에서 돈 안 들이고, 잘 고쳐볼 방법이 없을까 하는 거죠. 컴퓨터 한 부품이 문제인데 전체를 바꾸라고 하면 힘들죠. 리모델링에서 벌어지는 일이 딱 그런 일이에요. ‘이것만 바꾸면 안 될까요? 꼭 이걸 다 해야 될까요?’ 이 중심에 있죠. 굉장히 빛나는 자리는 아닙니다만, 누구에게나 굉장히 필요한 자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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