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김현경·1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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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녹색건축물을 탐구하는 잘그린건축연구소 민현준 소장 1편

김현경

사진김현경

편백경로당은 서울시 1호 제로 에너지 건축물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빨간 벽돌의 오래된 경로당은 그린 리모델링으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동네 사랑방으로 재탄생했다. 시대가 변하며 공간의 사용이 달라진 지금. 환경을 위해서도, 편안한 공간을 위해서도 리모델링은 필요하다. 그린 리모델링에 집중하고 있는 (주)잘그린건축연구소 민현준 소장은 리모델링에서 핵심은 탄소를 저감하고 더 따뜻한 건물로 바꾸는 것보다, 실제로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간으로 탈바꿈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게 리모델링에서 진짜 벌어지는 일이에요. 단열재를 더 넣고, 외관이 바뀌는 것보다 정말 불편한 것들을 해결하는 게 중요해요. 좋은 외장재만큼 남녀 화장실을 분리하는 게 필요하죠.”


Q. 건축사사무소가 아니고 건축’연구소’예요. 연구소로 이름을 짓게 된 이유가 있나요?


건축사사무소는 정말 건축사법에 따른 건축 업무가 중심이다 보니, 일반 연구나 인증 내용을 잘 못 다룰 것 같았어요. 연구를 좀 더 깊숙하게 해보고 싶었죠. 잘 ‘그린’ 건축연구소, 녹색 건축 연구소 같은 느낌이죠. 이런 틀을 가지고 여기서 파생되는 설계나 인허가 업무도 할 수 있는 느낌과 구도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돈 되는 방향으로 가게 되는 거죠. (웃음) 이름 때문인지 거의 그린 리모델링 설계 문의가 많이 들어옵니다. 


Q. 친환경 쪽으로 방향을 정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이전엔 친환경 컨설팅 회사에 다니셨다고 들었어요.


건축 설계를 공부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회의가 있었어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정답이 없죠. 더 논리적인 게 없을까 했는데, 녹색 건축은 점수가 있었어요. 창작물의 결과에 점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습니다. 당시에는 나무를 얼마나 많이 심느냐가 관건이었다면 그 뒤로 에너지, 탄소 내용이 점점 들어왔어요. 이제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사용 자원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체계가 만들어졌죠. 아직도 진행 중이긴 합니다만 과거에 비해 잘 다듬어지고 있고, 이 방향성에 분명 뭔가 있구나 스스로 믿어보면서 가는 중입니다. 


서울시 노원구 구립 편백경로당의 개선 후 모습 사진제공: (주)잘그린건축연구소


편백경로당 개선 전 모습 사진제공: 서울시


Q. 건축을 하는 분명한 이유가 필요했던 거네요. 편백경로당은 그렇게 나온 사례고요. 편백경로당을 처음 만났을 때가 궁금한데요. 


편백경로당 사례에는 공무원들의 실험, 약간의 용기, 도전이 있었죠. 그때 회사를 차리고 ‘뭐해야 되지’ 이러던 나날 중, 설계 좀 해보라고 연락을 받았어요. 제가 제일 한가해 보여서인지 감사하게도 일을 맡겨 주셨어요. (웃음) 당시 기후환경본부에서 ‘ZEB 전환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어요. 이 전환 사업은 당시에도 환경부서에서 힘차게 진행해보려던 사업 중 하나였고요. 그린 리모델링보다 약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던 재밌는 초기 사업 모형이었습니다. 


Q. 기존 건물은 거실에 단열재도 없던 빨간 구옥이었어요. 문제가 많았을 텐데요.


문제보단 매력인데요. 계속 건물을 다루다 보니 깨닫는 게 있습니다. 한옥이 지금의 단독주택이 된 거잖아요. 최초의 한옥은 우리가 지내는 사랑방과 몇 개의 방만 따뜻하면 됐고, 대청마루는 열린 공간으로 냉난방하는 곳이 아니었어요. 그 공간 개념이 편백경로당에 들어와 있더라고요. 아주 재미난 개성인 거죠. 물론 그 개성이 열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 돼서 어디부터 어떻게 바꿔야 되나 했죠. (웃음) 아직도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7~80년대 지어진 많은 집의 현재 상황이에요.


편백경로당 개선 후 평면 자료제공:(주)잘그린건축연구소


Q. 바꿔야 할 게 많았겠네요. 편백 경로당은 기존 건물이 얼마나 남아있나요? 


옛날의 흔적은 밑바닥에 발판 하나 정도예요. 이거라도 남겨야 오래된 역사를 누군가 기억할 것 같아서 ‘이것까지 덮지 맙시다.’ 마지막까지 주장을 해서 간신히 남아있는 물갈기 돌이 하나 있어요. 전체적으로는 발코니 창이 나와 있고, 창 안쪽에 외벽이 있었어요. 창 안쪽 외벽을 밖으로 확장했죠. 그러면서 전체 외벽을 단열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습니다. ‘축열 벽체’라는 게 있어요. 외벽을 부수지 않고, 앞에 통창을 달아 햇빛이 옛날 외벽에 들어가요. 낮 동안 열을 받다가 저녁이 되면 복사열을 내뿜죠. 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편백경로당 개선 후 내부 거실과 다이닝 공간 사진제공:(주)잘그린건축연구소


편백경로당 개선 후 주방 공간 사진제공: (주)잘그린건축연구소


Q. 동시에 제로 에너지 건축물로 바꾸기 위해 신재생 에너지가 필요했죠. 자립률이 100.1%에요.


실은 리모델링할 때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고민은 많이 못 해요. 도시 안에서 쓸 수 있는 게 대표적으로 태양광, 지열, 연료전지예요. 소형 풍력도 있지만 도시 안에서 풍력은 소리도 나고, 발전도 힘들고요. 지열은 땅을 200m 파고 나온 슬러지를 처리해야 하는데, 리모델링에서 하긴 힘들죠. 연료 전지는 1K짜리 한 통에 3천만 원 정도 해요. 전체 예산이 2억 5천 정도여서 그럴 돈은 없었죠. 제로 에너지 인증 계산법이 1년 전체 소비량과 생산량이다 보니,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태양광을 많이 설치하면 획득 가능해요.  특히 1층의 작은 건물이라 그렇게 어려운 점은 없었죠. 덕분에 준공이 빨라져서 서울시 1호 건물이 됐습니다. 좋은 케이스의 건물이었던 게 원래 오래된 건물이지만, 당시에 잘 지어놔서 구조 기술사님하고 확인했을 때, 굳이 수선할 부분이 없었어요. 문제는 옛날 우리 전통 건축이 가지고 있는 작은 방의 형태였죠.


Q. 작은 방의 문제는 어떤 것이었나요?


요즘 건물보다 과거 한옥의 어디가 제일 좁은가 하면 ‘부엌’. 부엌 자체가 너무 작아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서 방 하나를 없애면서까지 부엌을 확대했죠. 이게 옛날 생활 양식의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옛날에는 손님이 오면 저기 구석진 부엌에서 상을 차려서 밖으로 들고 나오는 개념이어서 문제가 없었죠. 이제는 부엌의 여건이나 장비들도 굉장히 좋아졌잖아요. 모두 식사까지 하는 공간이다 보니 가구도 들어가야 하고요. 


단양군 폐기물처리장 관리동 개선 후 모습 사진제공:(주)잘그린건축연구소


Q. 에너지 개선 외에도 평면 개선이 중요하네요. 아무래도 실제 사용자를 고려해야겠죠.


탄소중립선도사업으로 단양군 폐기물처리장 관리동을 그린 리모델링 했던 패널이 아직 있는데, 이걸로 한 번 보여 드릴게요. 부서에서 건물을 더 쓰기 좋게 만들기를 원했는데, 예산을 받을 때는 그린 리모델링에 대한 예산이지, 사용자를 고려한 예산은 없어요. 그래서 외장 계획을 했다가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거죠. “사실은요 소장님. 저희가 이런 문제들이 있는데, 고쳐 주시면 안 돼요?”하고 요청하시더라고요. 그럼 외장을 많이 포기해야 하는데 괜찮은지 물으니 “어우, 해주세요.”하셨어요.


단양군 폐기물처리장 관리동 개선 전후 모습 사진제공: (주)잘그린건축연구소


단양군 폐기물처리장 관리동 개선 전 평면 자료제공:(주)잘그린건축연구소


단양군 폐기물처리장 관리동 개선 후 평면 자료제공: (주)잘그린건축연구소


Q. 여기도 원래 주방이 되게 작았네요.


옛날 우리 습성이 남아있는 거죠. 주방이 다 작아요. 그리고 화장실이 한 개예요. 여자도 같은 화장실을 썼던 거죠. 실제로 공간을 쓰시는 분들하고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사무실과 입구는 그대로 두고, 샤워실의 크기를 줄였어요. 사실 탈의실, 짐을 놓는 공간이 중요하지 누가 샤워를 오래 하겠어요? 그리고 대망의 여자 화장실. 크게 해드리고 싶었지만, 공간의 특성상 쉽지 않았어요. 마련하려고 엄청나게 설득했죠. 남자 화장실은 장화에 흙 묻은 채 들어가지 않게 바깥쪽으로 문을 냈고요. 밖에서만 들어갈 수 있던 보일러실을 내부에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냈죠. 또, 숙직실이 과하게 넓었어요. 혼자 자는 숙직실이 크면 춥기만 하죠. 숙직실을 줄여서 주방을 위한 팬트리를 마련했습니다. 식사 공간도 넓혔어요. 복도와 연계성을 가지고 조금 더 넓고 밝은 곳에서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단양군 폐기물처리장 관리동의 패널로 사례를 소개했다.


이런 게 리모델링에서 진짜 벌어지는 일이에요. 단열재를 넣고, 사진상으로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평면이 똑같으면 안 되죠. 정말 불편한 것들을 해결하는 작업에 품도 돈도 많이 들어가요. 그래서 좋은 외장 자재를 다 포기했어요. 그것보다 여자 화장실 하나 더 두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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