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는 모든 생명체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환경과 나뉠 수 없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서로 연결된 자연 속에서 인공적으로 지어지는 건물이 자연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건축사사무소 노둣돌을 이끌고 있는 이윤하 소장은 국내 생태 건축가 1세대라 할 수 있다. 건축가, 시인, 생태, 친환경, 인권 등 그를 나타내는 키워드는 여러 가지다. 다양성의 존중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그는 발로 뛰며, 친환경 건축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96년도 자신의 사무소를 개소한 이후 ‘하늘뜨락, 물아당, 조태일 문학관, 비웅사’ 등 다수의 생태 건축 작업에서 그의 건축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건축사사무소 노둣돌 건축 프로젝트. 비웅사, 조태일시문학관(내부), 세진당 (좌측부터 시계 방향) 사진: 건축사사무소 노둣돌 제공
앞서 인터뷰한 ‘삼송동 주택’의 건축주 가족은 이윤하 소장의 오랜 지인이다. 함께 육아하며 그의 건축 철학에 자연스레 스며든 건축주 가족은 새로 집을 지으며, 그에게 설계를 맡겼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삼송동 주택’의 곳곳에는 그의 철학이 묻어있다. 이윤하 소장과 만나 그가 생각하는 친환경, 생태 건축과 삼송동 주택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고맙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건축사사무소 노둣돌 이윤하 소장
“오늘 고맙네요. 오래전부터 친환경, 생태 건축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왔어요. 본질적인 이야기 다음으로 기술이 결합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가를 대상으로 많은 교육을 해왔지만, 실제 작업에는 요소나 기술만 따서 넣는 데 급급하더군요.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정도는 알지만, 생태,친환경 건축의 근본적인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에 아쉬움이 있습니다. 에너지엑스가 먼저 이런 이야기를 꺼내주어 반갑네요.”
Q: 저희도 소장님과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어 기쁩니다.(웃음) 소장님 정보를 찾아보니 건축, 생태, 인권, 친환경, 시인 등 소장님을 나타내는 단어가 많아요.
A: 제가 하는 일이 좀 광범위한데요. 메인 작업은 생태와 친환경 건축입니다. 또, 생태권은 사실 인권과 멀리 있지 않아요. 상호보완적이죠. 생태와 인권을 융합해 건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좀 어렵죠?(웃음) 시도 마찬가지예요. ‘사람의 이야기를 어디에 담아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어요. 둘 다 창작 작업이죠. 건물은 공간 속에 사람의 동선을 만들고, 그 안에 희로애락과 이야기를 만들어요. 시도 인간의 감정을 표출하고 이야기를 담죠. 건축은 대지 위에 형태로 구축하고, 시는 마음에 새로운 집을 짓는 과정이에요.
Q: 생태, 건축, 시 중심에는 모두 사람이 있네요. 생태와 인권이 맞닿아 있다는 얘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A: 좋은 건축을 위한 하나의 묶음이라고 보시면 돼요. 건축가의 길로 접어들던 시절,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작업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우리 사회에 결핍된 부분, 아직 연구가 덜 됐거나, 필요한 곳에 가이드라인을 잡는 건축 작업을 시작했죠. 건축은 사유재산인 동시에 다수를 위한 공공 공간이에요. 하지만 물리적 접근권이나 사회적 사용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인 문제도 그렇고요. 계층에 따라서도 공간 점유율이 나뉘죠. 인권에서도 생태, 환경에서도 좋은 건축이 되어야 해요. 쾌적해야 하고, 현대 기술과 결합하면서도 자연과 사회를 통합하고 연결해야 좋은 건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묶여있다는 거예요.
종로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조금 이해가 가네요. 생태 건축은 최대한 주변의 자연 재료로 짓는 건축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소장님의 이야기와 작업은 좀 다른 것 같아요.
A: 그것도 하나의 요소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생태 철학은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정의가 있습니다. 결국, 생태권을 어떻게 유지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방식이 조금씩 다른 건데 말이죠.
‘근본생태주의’는 말 그대로 자연 재료를 가지고 생산할 때부터 폐기할 때까지 환경 부하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고 있고요. 그 반대편에는 ‘기술중심주의’가 있습니다. 기술은 계속 진보하고 있으니, 적극 이용하자는 쪽이죠. 난방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다면, 현대 기술로 해결하자는 거죠. 태양광도 그 중 하나의 방법이에요. 또, 양 극단의 가운데 사회적으로 해결하자는 ‘사회생태주의’라는 개념이 있어요.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 앞에서 모두 고개를 끄덕이지만, 자기 집을 지을 때는 달라져요. 그걸 법과 제도를 통해 관리해야 한다는 ‘환경관리주의’ 입장도 있어요. 저는 따지자면 사회생태주의에 가까워요. 공동체나 사회 구조 속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거죠. 해결 방법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흙집, 목조주택 같은 자연재료를 이용한 건축도 많이 했고, 콘크리트 구조로 저에너지 건물도 많이 지었어요. 친환경 건축의 관점을 용도에 따라 적용하고 있죠.
Q: 자연과 기술 사이에 다양한 이야기가 얽혀있군요. 소장님이 사무소를 개소한 90년대에는 지구 온난화나 기후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대두하던 시점이 아니었어요.
A: 아까 말씀드린 대로, 주제와 철학이 있는 건축을 하고 싶었어요. 처음 건축사사무소를 다닐 때 단순 복제 작업에 지쳤었죠. ‘나의 창작 의지는 어디 있는 거야.’하고요.(웃음) 그래서 건축사 면허를 빨리 따서 회사를 차렸죠. 1987년 정도에 UN에서 나온 리포트에 곧 성장의 한계를 겪을 사회에서 뭘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선 환경 문제를 빼놓고 갈 수 없다.’라는 이야기가 저의 건축 지침을 바꿨죠. 이거로 평생 건축을 해도 착한 건축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대중하고 같이 호흡하면서 같은 지향점을 갖고 나아갈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러고 90년대 중반부터 공부하기 위해 돈만 생기면 유럽, 특히 독일을 많이 찾았어요.
Q: 그때부터 유럽은 친환경 건축을 하고 있었나요?
A: 그 중 독일이 가장 앞서 가고 있었어요. 독일, 영국 등으로 답사를 다녔죠. 당시에는 태양광 패널만 붙어있으면 ‘친환경 건축이야!’하며 사진을 찍어서 가져오곤 했어요. 건축계와 대중한테 빨리 알리고, 따라가고 싶었어요. 몇 년을 그랬는데 ‘별거 아닌데 우린 왜 못하지’ 참 허무했어요. 그래서 우리 전통기술과 태양광 같은 친환경 기술을 접합하는 작업들을 시작했던 거예요. 그게 저한테 계기라면 계기였죠. 그때를 시작으로 생태 쪽 인문학자나 철학자, 건축가, 조경가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생태 아카데미를 99년도에 시작했어요. 전문가와 건축가들을 교육하면서 생태와 친환경 건축을 알리는 작업도 해왔죠.
Q: 사실 국내에는 ‘태양광이 붙은 건물은 안 예쁘다.’라는 인식이 있어요. 유럽은 좀 달랐나요?
A: 나라마다 좀 다르죠. 독일은 굉장히 실용주의여서 효율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태양광 효율이 가장 높은 35도를 꼭 지키지 않아요. 건물 지붕이나 외벽에 맞춰 실용적으로 배치합니다. 우리나라는 정부 보조금을 받으려면 메뉴얼 대로 설치해야 해요. 건물의 형태와 상관없이, 남향으로 35도를 맞춰야 하니 이상하게 설치되는 거죠. 삼송동 주택은 메뉴얼을 따르지 않았어요. 메뉴얼을 맞추려고 일부러 각을 만들면 디자인이 이상해져요. 삼송동은 원래 지붕에 올라가야 할 징크 대신 태양광 패널이 올라갔죠. 징크는 합금을 엄청난 고열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많은 탄소가 발생합니다. 저렴한 방수를 깔고 그 위에 패널을 올렸어요. 외피 대신 선택한 거죠.
방수처리 된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을 깔기 위해 작업 중인 모습 사진: 삼송동 건축주 제공
태양광 패널 시공이 완료된 모습 사진: 삼송동 건축주 제공
Q: 태양광 패널이 올라간 건물을 많이 설계하셨을 텐데, 에너지엑스의 패널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했어요.
A: 지금까지 많은 태양광을 설치했는데, 사실 실리콘형만 했어요. 실리콘 형은 벽에 일체형으로 붙이기도 불편하고, 화재의 위험이 있어요. 또, 완성된 모습이 안 예뻐요.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프레임 위에 올라가다 보니 거슬리더라고요. 딱 패널 면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에너지엑스가 가진 박막형 패널 제품이었어요. 지금 파주 공동체 마을 등 몇 프로젝트에도 이 제품으로 설계하고 있어요.
Q: 친환경으로 짓되 미관을 포기하지 않은 거네요. 삼송동 주택은 태양광뿐만 아니라 종이 단열재를 쓴 패시브 하우스예요. 다양한 곳에 환경을 위한 요소가 있던데요.
A: 그렇죠. 될 수 있으면 환경 부하가 적은 재료를 쓰려고 했어요. 콘크리트는 기초에만 써서 최소화했고요. 나머지는 다 목재를 썼습니다. 창도 전부 삼중유리에 시스템형이라 기밀성과 단열 성능이 좋고요. 친환경 건축하면 재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데, 재료만 친환경으로 쓴다고 친환경 주택은 아니에요. 지형과 주변 환경을 어떻게 이용하고 끌어들일 것인지, 바람과 해가 어떻게 기능하게 할 것인지 모두 고려해야 하죠. 전면에는 일부러 중정이 비집고 들어온 형태로 틈을 냈어요. 작은 풍경을 만들면서 집 안으로 해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죠. 2층에는 작은 테라스가 2개 있는데, 앞쪽은 해가 들어오는 공간이고, 뒤는 바람이 머무는 공간이죠. 뒷마당도 그렇고요. 공간도 숨을 쉬어야 해요.
삼송동 주택 1층 모형 사진: 삼송동 건축주 제공
삼송동 주택 2층 모형 사진: 삼송동 건축주 제공
Q: 마당과 테라스는 자연과 집을 연결하는 역할이네요.
A: 코로나가 이제는 사그라졌지만, 이런 전염병이 다시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팬데믹 이후 공간은 어떻게 돼야 하는지 고려하면서 반 외부, 내부인 공간을 두었어요. 이런 공간을 매개 공간이라고 하는데 완충해주는 공간이죠. 또, 길 건너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병풍같이 펼쳐진 아파트 풍경이 되었어요. 밤에는 마치 홍콩 같은 모습인데, 공허한 느낌이 들어요. 2층은 특히나 도시로 열린 뷰를 가졌죠. 공허한 도시를 바라보기보다 가족의 이야기가 있는 풍경을 보길 바랐어요. 테라스와 중정은 공간에 깊이감을 만들고, 가족의 풍경으로 시선을 모으는 동시에 완충하는 역할도 하는 거죠.
Q: 집에 방문했을 때, 중정과 테라스로 어디서든 자연이 보이더라고요. 건축주 부부가 소장님에 대한 믿음이 강하시던데요.(웃음)
A: 친해요. 그 집 아이들 기저귀 찰 때부터 봐왔죠.(웃음) 저희는 서로 별명으로 불러요. 저는 인디언이고, 부부는 고양이, 도미노예요. 공동육아를 하면서 짝손으로 연결됐는데, 조경가들이니 더 잘 맞았죠. 오래 알고 지냈으니 의기투합이 쉬웠어요. ‘아이들이 자라는데 환경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 ‘시뮬레이션해보니 보수적으로 잡아도 10년이면 초기 투자 비용이 회수된다.’ 하면서 설득했었죠. 공간을 그릴 때는 가족이랑 함께 설계했어요. 아이들도 설계할 때 직접 도면을 그려왔죠. 처음에 쌍둥이가 둘 방 사이에 큰 창을 내달라고 했어요. 자기 전에 서로 이야기할 수 있게요. 지금은 좋지만, 나중에 너희 후회한다고 말렸었죠.(웃음) 가족들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반영해서 설계했어요.
Q: 동네 사람들도 집에 많이 방문한다고 들었어요.
A: 그 동네는 큰 변화가 없는 언덕 위 오래된 마을이죠.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살면서 동네를 아주 예쁘게 가꿨어요. 공동체 의식이 강한 동네예요. 또, 그 가족이 워낙 사람이 좋아요. 주변 이웃들과도 친하고요. 집의 1층은 사실 마을 공공 공간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을 사람들 누구나 와서 놀고 파티하는 공간, 마을 마당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사생활과 공동체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 고민이 있었죠.
Q: 가장 개인적인 집에서도 공동체와 잘 섞이기 위한 고민이 있었군요.
A: ‘정인의 오르막길’이라는 노래 아세요?
Q: 월간 윤종신에 나왔던 노래요?
A: 설계할 때 그 노래가 생각났어요. 동네 오르막길이 정말 가파르거든요. 근데 사람이 모이고,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올라가는 게 편안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길을 따라 맞이해주는 현관이 만들어지고, 거실과 마당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동네 고양이도 드나드는 집. 그 위로 계단을 오르면 개인적인 공간이 나오는 그런 집을 생각했어요. 숲의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줄기처럼 마당과 현관, 거실, 테라스와 방이 나오는 거죠. 1층은 환대의 공간, 열린 공간이고, 2층은 가족들을 위한 공간으로 작은 거실과 자연이 머무는 테라스를 뒀죠.
Q: 앞서 얘기하신 소장님의 건축 철학이랑 맞물리는 집이네요. 삼송동 주택이 완공된 후 회고를 해보면요?
A: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갈지 궁금해요. 마당도 여전히 만들어가고 있지만, 공간도 가족과 함께 자라요. 집은 삶에 따라 변화하잖아요. 제가 처음에 구상했던 것과 다를 수도 있고요. 앞쪽 전망 테라스가 어떻게 변할지, 산을 바라보는 목욕 테라스가 어떻게 달라질지. 필요에 따라, 삶의 변화에 따라 공간은 부풀어질 때도 있고 줄어들 때도 있죠. 그 변화가 궁금합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소장님이 생각하는 좋은 건축, 공간은 무엇인가요?
A: 저는 계속 ‘이야기’라고 말해요. 서사가 만들어지고 쌓여가는 공간이겠죠. 얼마 전에 다른 건축주와 한잔하고 헤어지는데, 이 분이 장문의 문자를 보냈어요. 그 중 ‘마음의 풍경을 그리는 건축가’라는 말이 있었는데, 최고의 찬사로 느껴졌어요. 저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의 풍경을 읽으면서 형태로 반영하는 거죠. 건축주가 공간에 애착이 생길 수 있게 이전의 삶을 함께 되돌아보고, 앞으로 지향을 같이 설계하는 거예요. 가족이 살면서 공간도 계속 자라나야 해요. 사람도 공간도 성장하는 공간이 좋은 건축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좋은 건축이 되기 위해선 생태, 친환경, 인권이 기본으로 따라오는 거죠. 좋은 건축 속에서 이야기가 풍경이 되고, 사람이 함께 자라는 공간이 좋은 공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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