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러 공법이 접목된 파빌리온

박지일·19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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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듈러 공법이 접목된 파빌리온

친환경과 심미성을 갖춘 시도들

박지일

사전 제작된 모듈을 현장에서 조립하여 건축물을 완성하는 방식, 모듈러 공법. 특정한 목적을 지닌 채, 정해진 기간만 세워지는 건축물, 파빌리온. 이 둘을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인류는 보편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건축의 물꼬를 틀 수 있지 않을까. 세계 곳곳에는 모듈러 공법으로 완공된 파빌리온이 자리한 바 있다. 그중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며 혁신과 기능, 지속 가능성 모두를 아우를 만한 건축은 무엇일지 떠올려 본다.


북웜(BookWorm)


Ⓒ Sameer Chawda


모든 연령대의 사람을 고려하면서도 환경을 껴안은 건축물, 북웜(BookWorm). 인도의 디자인 스튜디오 NUDES에서 2019년 12월경에 실시한 프로젝트로, 인도 뭄바이의 박물관 ‘CSMVS(Chhatrapati Shivaji Maharaj Vastu Sangrahalaya, 차트라파티 시바지 마하라즈 바스투 상가라할라야)’ 내 정원에 세워진 파빌리온이다. ‘책벌레’를 의미하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건축물의 탄생 배경은 다소 특별하다. ‘2030년까지 모든 청소년과 성인 상당수의 문해력 및 수리력을 성취한다’는 국제연합(UN)의 목표에 부응하며 완성됐기 때문이다.


뭄바이 시민을 품은 이 작은 도서관이 완성되는 데에 필요했던 부품의 개수는 3,600개. 각 부품에는 탄소 배출량이 적은 재활용 합판이 사용됐다. 이 건축물은 모듈러 공법으로 설계돼 현장에서 일주일 만에 조립식으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인도 곳곳에서 쉽게 해체하고 재건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그 바탕에 자리한다.


Ⓒ Sameer Chawda


수천 개의 부품으로 지어진 만큼, 건축물 자체의 길이도 약 35m에 달한다. 하지만 위압감을 드러내기보다는 따뜻한 재치로 모두를 품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중앙 통로 양쪽으로 목재 사다리 두 개가 물결치듯 뻗어 있는 듯한 이 건축물은 약 12,000권의 책을 거뜬히 보관할 만큼 든든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또한, 사다리 밑으로 드리우는 그늘에서 바깥 풍경도 바라볼 수 있기에 공간을 이용하는 이들은 다채로운 경험을 즐길 수 있다.


그린 클라우드(Green Cloud)


Ⓒ John Siu


지속 가능한 건축과 자연 친화적인 디자인의 조화가 자아내는 미학을 보여준 파빌리온, 그린 클라우드(Green Cloud). 글로벌 환경 단체 ‘네이처 컨저번시(The Nature Conservancy, 이하 TNC)’의 주도하에 중국의 건축사무소 ‘츄보 디자인Zhubo Design’ 에서 2018년에 진행된 프로젝트다. 나아가, 중국 남부 해안 도시 선전(Shenzhen) 속 마을 ‘강샤(Gangxia)’에 초록빛 생명을 불어넣은 파빌리온이기도 하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릴 만큼 선전은 발전을 거듭했지만, 강샤는 고층 빌딩에 둘러싸인 섬처럼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협소한 공간, 열악한 채광, 콘크리트로만 이뤄진 환경 등으로 위생과 안전을 챙기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빗물 관리 능력을 향상하며 주민에게 쾌적한 공용 공간을 제공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바로 마을 지붕에 모듈러 공법을 활용한 파빌리온을 짓자는 아이디어였다. 맑은 생명력을 지닌 구름, 그린 클라우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The Nature Conservancy


그린 클라우드는 시공이 간단한 컨테이너 4백여 개를 수용할 만큼 거대한 3차원 경량철골 구조물로, 컨테이너 하나하나는 중국 남부 지방에서 자생하는 식물로 채워졌다. 이 파빌리온은 마을의 여러 지붕 중 잘 활용되지 않는 지붕에 빗물을 보존하고 녹지를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시공됐다. 그 결과, 기존 콘크리트 옥상은 빗물을 흡수하고 보존할 수 있는 식생으로 변모했다. 또한, 빗물 관리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65%의 유출 제어율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성된 공간은 사람들이 걷거나 앉아서 쉴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됐다. 나아가, 음악회가 개최되거나 자연 학습 공간으로 활용되는 등 지역 주민 간 사교 활동의 장으로도 거듭났다. 모듈러 공법으로 완성된 파빌리온이 지닌 잠재력이 얼마나 거대할 수 있는지, 그린 클라우드는 이야기한다. 지역에는 새로운 활력을, 주민에게는 풍요로운 일상을 선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보여주면서 말이다.


지속 가능하고 환경친화적인 건축이 많아질수록 일상의 풍경도 바뀔 것이다. 인생의 필수 조건, 의식주. 그중에서도 삶이 펼쳐지는 공간을 뜻하는 ‘주’에서부터 일상의 표준 값이 바뀌는 시작점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서로 다른 수많은 삶이 오가는 공간인 파빌리온을 통해 친환경과 심미성 모두를 갖춘 모듈러 건축을 만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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