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시내를 거닐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조형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2011년 제4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총감독 승효상, 아이 웨이웨이)의 일환으로 시작된 ‘광주폴리 프로젝트’다. 폴리(folly)는 본래의 기능을 잃고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의미하지만, 광주폴리는 사뭇 다른 결을 지닌다. 공공공간에서 장식적 역할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능적 역할까지 아우르며 도시재생에 기여할 수 있는 건축물로 기획됐기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 측은 “광주폴리는 도시 안에서 단위 개체로 작동하기보다는 군집을 이루어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며 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2011년부터 광주라는 도시와 밀접한 주제로 국내외 건축가들이 참여해온 광주폴리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40여 개의 폴리를 남겼다. 그리고 어느덧 5회차를 맞은 광주폴리의 주제는 <순환폴리:Re Folly>다. 총감독 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은 기후위기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저탄소,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폴리를 제안한다. ‘생산-사용-폐기’라는 기존의 프로세스를 전환하기 위해 디자인, 재료, 공법, 제작에 이르기까지 순환 가능한 시스템을 모색한다. 이러한 순환폴리의 의의는, 친환경 지역 자원이나 재활용 건축에 대한 탐구가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으로 시민이 사용할 수 있는 도시 공간으로 구현되어 그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데 있다.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완공됐거나, 완공을 앞둔 네 개의 폴리를 소개한다.
조남호 건축가(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 대표)의 '숨쉬는 폴리'
먼저, 순환폴리의 프로젝트 가운데 2023년 6월 가장 먼저 지어진 ‘숨쉬는 폴리’는 오랜 시간 목조건축을 탐구해온 건축가 조남호(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 대표)의 파빌리온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조남호와 협업한 이병호(숨쉬는 폴리 친환경 컨설턴트)는 “기술을 바탕으로 한 순환 과정을 통해 자연과의 건강한 공생관계 회복을 지향하며, 생성에서 소멸까지 전 생애 주기를 고려한 자재와 구법으로 지어지고, 쉽게 이동하거나 환경부하를 최소화하며 소멸될 수 있는 폴리”를 의도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목재가 다공성 다발 구조의 숨쉬는 재료라는 전제하에, 목재 세포의 원리를 다공성 목구조의 구성 원리로 확장해 숨쉬는 외벽의 디테일을 구현했다. 숨쉬는 폴리의 공간 구조는 단순한 평면에 박공지붕을 얹은 형태인데, 지붕 일부를 변형해 만든 에어포켓에 더운 공기를 모이게 하고 전동 창을 통해 배출하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땅속 2m 깊이, 50m 길이로 매설된 쿨튜브는 땅속 공기를 유입해 실내온도를 ±5°C 이상 조정하며 세부 기술을 완성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이병호가 환경 계획의 세부 기술을 제안하고, 시뮬레이션과 탄소 전 과정 평가를 수행했다면, 조남호와 시공에 참여한 수피아건축은 목재에 대한 이해와 구조적 해석을 바탕으로 디테일과 디자인을 구현했다.
전진홍, 최윤희 (건축 스튜디오 바래 대표)의 '에어 폴리'
전진홍과 최윤희가 이끄는 건축 스튜디오 바래는 전라남도 고흥에서 생산되는 미역 부산물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미역을 식용으로 양식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뿐더러, 미역의 잎 부분을 제외한 줄기나 뿌리는 고스란히 버려진다는 사실에 착안해, 미역 줄기를 소재로 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개발했다. 이번 순환폴리에서는 해조류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에어 폴리’를 선보인다. 에어 폴리는 그간 바래가 탐구해온 공기 연작의 연장선에 있다. 공기로 형상을 구축해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조립과 해체, 이동이 용이하도록 만든 공간 구조의 표피를 해조 필름으로 구성한 것이다. 농가의 비닐하우스를 재해석한 공간이자, 재배된 작물을 담고 운송하는 플라스틱 박스의 대안이 될 에어 폴리는, 쓰임을 다한 후 해양 생태계로 돌아가는 지속 가능한 재료가 공간으로 구축될 때 어떤 가능성을 가질지 질문을 던진다.
이토 도요의 '옷칠집'
이토 도요는 한반도와 중국에서 전통적 소재로 쓰인 ‘옻칠’을 건축으로 구현한 ‘옻칠집’을 선보인다. 옻나무의 수액을 그릇이나 가구에 바르는 기법을 뜻하는 옻칠은 생활용품에서 농업 및 어업용 도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내구성이 뛰어나면서도 환경친화적인 재료로 평가받는 옻칠은 어떻게 공예 기법을 넘어 건축 구조재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일본에서는 마른 옻칠을 한 조각상을 ‘간시쓰’라고 일컫는데, 이 조각상은 점토 안에 삼베와 같은 섬유를 겹겹이 쌓은 뒤 옻칠을 여러 번 바르고, 다시 점토를 제거해 속이 빈 구조를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된다고 한다. 섬유를 겹겹이 쌓아 구조를 강화하는 기술은 탄소 섬유 시트 원리와 유사해, 이를 통해 가벼운 조각상을 만들 수 있다. 순환폴리에서 선보이는 옻칠집 역시 이러한 원리를 공유한다. 지역장인, 섬유 기반 건축 구조 전문가, 국내 옻칠 재료 생산 기업이 협업해 세계 최초로 옻칠을 건축에 적용하고자 시도한다. 다만 옻칠은 재료 특성상 세심한 관리를 필요로 해 적절한 유지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수 년 안에 노후화될 가능성이 있다. 옻칠집은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한다. 낡고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것이 아니라, 공들여 지은 만큼 오래도록 고쳐 쓰는 일의 가치를 가늠하게 한다.
어셈블, BC, 아틀리에 루마의 '에코 한옥'
마지막으로 영국의 어셈블 스튜디오, 프랑스의 아틀리에 루마, 벨기에의 비씨 아키텍츠로 구성된 팀은 광주 구도심의 버려진 한옥을 리노베이션해 새 생명을 부여한다. 이들 사무소는 건축 및 디자인 영역이 환경과 사회와 맺는 관계를 재편하는 데 관심을 두고, 친환경 자재 개발부터 시민 참여 디자인, 순환 시공, 지역 생태 자원 리서치 및 디자인까지, 재료와 구법 실험을 다방면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들은 열악한 상태의 기존 건물에서 자재를 회수해 신축 건물의 자재로 사용하거나, 증축이나 보수가 필요한 노후 한옥 건물 개보수에 일부 활용하는 전략을 취한다. 현장의 기존 기반과 콘크리트를 부수고 분해해 새로운 건축 요소에 통합시켜, 결과적으로 모르타르 혼합물에 새로운 골재 사용을 줄인다. 이 외에도 광주와 인근 지역의 재료와 자원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프로젝트에 적용한다. 가령 버려진 굴껍질, 다시마, 건설 현장에서 파낸 흙에서 추출한 저탄소 소재를 현대적 건설 기법에 결합하는 식이다. 기존의 한옥은 작은 마당을 갖춘 동네 쉼터이자 사회적 기업의 사무 공간인 ‘에코 한옥’으로 조성되는데, 이 프로젝트에는 단순히 건물의 용도가 변화하는 일 외에도 작업을 둘러싼 일련의 건축 행위가 건축 참여자, 나아가 건설 산업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담겨 있다.
한편 신규 폴리 네 점은 기존 폴리와 연결되는 둘레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제5차 광주폴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광주폴리 둘레길’은 지난해 10월 말 1차 둘레길이 조성됐으며, 2차 둘레길은 오는 6월 마무리될 예정이다. 광주광역시는 제5차 광주폴리가 완공되면 광주 도심 곳곳이 건축과 문화예술로 채워져 도심 문화와 관광 자원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료 출처: https://www.gwangjufolly5.org/kr